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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의 인연은
 
記者 김동길
 
 

     인생을 오래 살다 보니 젊어서는 전혀 풀리지 않던 문제들이 풀리는 경우가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인연이나 또는 남녀 간에 존재하는 연분이 무엇인지 딱히 알 수는 없지만 짐작은 가능한 처지가 되었다. 부모나 일가친척은 숙명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선택에 의한 것이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고 그리하여 생기는 변화는 헤아릴 수 없다고 생각된다.


     누군가는 어느 대학을 선택했기 때문에 만난 스승이 있을 것이고 어떤 사회적 모임에서 우연히 만나 예기치않게 스승으로 모시게 된 어른도 있을 것이다. 자유당 시절에 농림부 장관을 지낸 이종현 씨는 길을 가다 노방 전도하는 젊은이에게 감화를 받고나서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데 그 후 교계에 거물이 되었고 사업을 하여 크게 성공한 적도 있어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그를 농림부 장관에 앉혔다고 한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것은 실로 엄청난 인연이다 해방 후 연희대학에 들어가 '김선기'라는 음성학 교수의 강의를 듣게 되었는데 나는 그렇게 잘 생긴 남자를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당시 김 교수는 아마도 40대 쯤이었던 것 같은데  런던 대학에서서 음성학(Phonetics)의 거두 다니엘 존스 (Daniel Johns)에게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언젠가 강의 시간에 그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자네는목소리가 참 훌륭해. 영어로 말하자면 'golden voice'라고 하지" 그 때만 해도 황금 같다는 목소리가 어떤 것인지 잘 몰랐다.


     1948년에  있었던 일로 기억한다. '원한경 박사' 사모님이 학교 구내에 있던 선교사 사택에서 괴한의 총탄을 맞고 세상을 떠나는 큰 소동이 벌어졌다.  그 사모님의 추모예배가 학교 노천강당에서 실시되었는데 내가 학생을 대표하여 추모사를 맡아 하게 되었다. 교무위원회에서 결정을 할 때  내 목소리를 '황금의 목소리'라고 칭찬한 김 교수의 천거가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나의 모든 능력을 동원해 추모사를 만들었고 그 자리에서 침착하게 낭독 하였다.  "백 총장이 자네 추모사를 들으면서 우셨어" 그 모임의 학생으로 출석하여 내 추모사를 들은 태환이라는 친구가  뒤에 나에게 전해준 말이었다.


     내가 한 시대의 말을 하는 사람으로 어떤 자리에까지 올랐다면 그것은 김선기 교수가 나로 하여금 그 추모사를 할 기회를 마련해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뒤에 역사를 가르치는 대학교수가 되었고 전 세계를 누비면서 한국인이 살아있는 모든 도시에서 강연을 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 시작이 그렇게 해서 이루어졌다는 말이다. 김선기 교수는 뒤에 서울대학으로 옮겨가 교무처장 자리에도 앉았었지만 총장으로 임명된 일은 없었던 것 같다. 알다가도 모를 것이 인생 아닌가. 젊은 학생 시절에 음성학 교수 김선기 선생을 만났기 때문에 나의 오늘이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김동길

Kimdonggill.com


 
기사입력: 2020/12/02 [04:53]  최종편집: ⓒ 국제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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