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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ot Fonteyn
 
記者 김동길
 
 

    요새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를 수 있지만 나와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은 누구나 전설적인 마고트 폰테인(Magot Fonteyn)이란 이름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그는 이미 영국 로열발레단(The Royal Ballet)의 최고 무용수로 유명했었는데 특히 러시아 키로프 마린스키 발레단의 천재로 알려진 당대 최고의 남자 무용수 루돌프 누레예프(Rudolf Nureyev)가 폰테인과 한 번 공연하기 위해서 러시아에서 프랑스로 망명했다는 이야기 때문에 마고트는 이전보다 더욱 유명한 발레리나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19년 태생인 마고트는 누레예프가 활동하던 그 때에는 이미 자신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뜻밖에 각광을 받으며 명성이 하늘을 찌르게 되었다.


    마고트 폰테인이 루돌프 누레에프보다 19살이나 연상이라, 처음에 폰테인은 두 사람이 파트너가 되는 것에 곤란해 했다고 하지만 함께 춤을 춰보니 호흡이 매우 잘 맞아 그는 누레예프와 20년 넘게 파트너로 호흡을 맞추며 수많은 무대를 같이 공연했고 그 시절 발레 계 최고의 파트너로 인정받게 되었다. 훗날 두 사람은 따로 활동하게 되었지만 죽을 때까지 좋은 친구 관계를 유지하며 마고트 폰테인이 경제적으로 힘들어 할 때 누레예프가 도와주기도 했다고 한다.


    내가 이 여성 발레리나를 기억하는 한 가지 이유는 그의 공연을 참관한 적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데이비드 프로스트 (David Frost)라는 영국 사람과 인터뷰하는 광경을 본 적이 있는데 그가 흠잡을 때 없는 완벽한 발레리나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데이비드에게 털어놓은 솔직한 심경은 그를 더욱 위대한 예술인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는 진솔하게 고백 하였다. “만일 영국에 로열발레단이 없었다면 마고트 폰테인이 어떻게 그만한 업적을 남기고 그만큼 유명한 무용수가 될 수 있었겠습니까. 나의 성공은 오로지 로열발레단 덕분입니다.”


    저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자기의 성공에 근본을 그렇게 명확하게, 겸손하게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만나보기 어렵다. 역시 그는 훌륭한 예술가이고 대영제국의 자랑이었다.

 

김동길

Kimdonggill.com


 
기사입력: 2020/11/28 [05:07]  최종편집: ⓒ 국제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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