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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생각나는 노래
 
記者 김동길
 
 

    일제 강점기의 이야기다. 해방이 되던 1945, 내 나이 열여덟이었다. 일본이 전시체제로 돌입하면서 5년제인 중고등학교를 4년제로 개편하는 바람에 한 반 위에 있던 형들과 같이 졸업하였다. 일본 군대에 불려가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나는 평안남도에서 실시하는 교원 자격시험을 보고 합격해서 교사 자격을 얻었다. 평안남도 학무국에서 나를 평남 평원군 영유읍에 있는 괴천공립국민학교로 파송하여 4월 초 그  초등학교 교정에서 취임식을 하고 3학년 담임으로  직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담임이던 반에 나와 동갑인 학생이 하나 있었는데  그는 이미 장가를 가서 아들도 하나 있다고 들었지만 자기 반 학생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있었다. 잘 생기고 체격도 좋은 편이었는데 이름은 정희택이었다. 그가 지금도 기억난다.

     815일 낮 12시에 중대한 방송이 있다고 해서 우리는 그 시간에 라디오 앞에 모두 모였다. 일본은 전쟁에 계속 이긴다고 큰소리를 쳐왔기 때문에 일본이 패망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던 터라 일본 천황이 죽어가는 목소리로 일본군은 연합군에 대하여 무조건 항복한다라고 한마디 했을 때 처음에는 다들 무슨 영문인지 잘 몰랐다.

     선생도 학생도 다 일본말만 쓰다가 갑작스레 우리말로 바꾸는 것이 처음에는 무척 어색하였다. 그 여름은 그렇게 가고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그 무렵 아이들은 처음 우리말로 동요를 배워 합창을 하게 되었다.

 

                     가을이라 가을바람 솔솔 불어오니

                     푸른 잎은 붉은 치마 갈아입고서

                     남쪽 나라 찾아가는 제비 불러 모아

                     봄이 되면 다시 오라 부탁하노라

 

     지금으로부터 75년 전에 있었던 일이지만 이번 가을은 무척 그 노래가 사무친다. 그때 아동들이 지금은 팔십 노인이 됐을 것이고.나는 구십 노인이 되었다.  숲속을 통해서 들려오던 그 노래는 간 곳 없고 그리고 그 어린이들도 찾을 길이 없지만 그 노래를 듣던 노인 하나가 아직 살아서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봄이 되면 돌아오라 부탁하노라라고 제비들을 모아 놓고 당부할 순 없어도 봄을 기대하는 한가닥 희망이 거기에 깃들어 있음을 느껴서 그런 것 아닐까.


김동길

Kimdonggill.com


 
기사입력: 2020/11/20 [05:19]  최종편집: ⓒ 국제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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