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아이디/비번 찾기
사설   칼럼   성명-논평
전체기사보기
사회 > 칼럼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소문난 냉면집
 
記者 김동길
 
 

    나의 누님 김옥길은 군사정권이 들어선 1961년부터 이화여자대학에 총장으로 취임하여 내외의 명사들을 많이 만나게 되면서 나의 어머님과 큰어머님이 소규모로 만들어 손님을 대접하던 냉면이 우리 집의 손님 대접에 중요한 사업으로 변모하였다. 나의 누님은 워낙 통이 크게 태어난 분이라 한때 이화여자대학의 교직원 500여 명을 오전 11시부터 시작해 저녁때가 될 때까지 질서정연하게 냉면을 대접하곤 하였다.


    집에서 냉면을 만들어 손님들을 대접한 지는 꽤 오래 되지만 60년대부터는 우리 집의 냉면이 장안에 유명한 냉면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평안남도 맹산에서 아버님이 시골면장으로 있으실 때도 우리 집에 드나드는 시골 사람들에게 집에서 틀을 두고 누르는 냉면을 많이 대접하다보니 우래옥이나 평양면옥과 맞먹는 유명한 냉면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먹을 것이 점점 흔해지던 대한민국에서 오히려 우리 집의 동치미와 냉면의 소박한 식단이 인기를 끌었다고 할 수도 있다. 냉면 위에 아무 것도 얹어주는 것이 없으니 시인 모윤숙이 우리 집 냉면을 처음 대하고 이게 나체 냉면이구만이라고 한마디 하던 그 재치를 지금도 기억한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흐르고 나서 내 생일이 되면 초대하지 않아도 우리 집에 점심 때 모여드는 사람이 한 100여 명은 된다. 이래저래 200여 명이 냉면을 먹게 되는데 어른들을 모시고 온 사람들까지 다 끼어서 먹으려면 우리 집 냉면 광에서는 냉면 300 그릇은 마련해야 한다.


    나는 이제 매우 나이가 많은 한 시대의 노인이 되었다. 90이 넘는 언덕에 오르고 보니 눈 하나 깜박 하는 사이에 1년이 가는 것만 같다. 코로나 예방을 주목적으로 내걸면서 문재인 정권은 여러 사람이 모이는 것을 매우 꺼려한다. 나도 그런 정부의 시책에 순응해야하기 때문에 올해에는 생일 축하 모임이 전혀 없다고 지면으로 밝혀 놓았었다. 그러나 그런 사정을 모르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국밥을 만들어 대접하는 것은 실례이니 소규모로 냉면을 누르기는 하였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다녀가는 이들의 전화번호는 반드시 적어 놓았다. 기를 쓰고 찾아오는 가까운 이들의 마음속에는 김 노인이 앞으로 살면 몇 년이나 더 살겠는가라는 생각이 스며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그런 뜻을 고맙게 생각하고 그날 오는 사람들에게 냉면 한 그릇 씩이라도 대접하고 싶었다.

 

김동길

Kimdonggill.com 


 
기사입력: 2020/11/06 [05:09]  최종편집: ⓒ 국제타임스
 
 
민간인 여러분 국가가 내려준 칼끝을 공직자들과 재벌들에게 겨눕시다
이전 1/131 다음
개인보호정책 기사제보 보도자료

등록번호:서울아01027|등록일자: 2009년 11월 13일
|회장;김원철|부회장;김종길|발행인:신상돈|편집위원장:이배영|주필:천상기|편집국장:이광석|본 신문의 기사 내용과 사진의 관계는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실황 영상 내용 등은 본 신문의 뜻과는 무관합니다. 본 기사 외에 발언 내용들은 발행인 시위-집회 발언 초안들입니다. E-mail - wbctimes@hanmail.net 주소:서울시 종로구 당주동 미도파광화문빌딩 503-504호 :02-3148-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