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1년 3월14일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날 밤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 사이 구미 소재 두산전자 공장에서 맹독성 화학물질 페놀 원액이 낙동강에 유출된 것이다. 그리고 4월22일 같은 공장에서 페놀의 2차 유출 사건이 또 발생한다.

페놀 원액 저장탱크에서 생산라인을 통하는 파이프라인 파열로 30톤가량의 페놀 원액이 대구 시민들의 상수원으로 흘러든 것이다.

페놀은 하이드록시벤젠에 해당하는 방향족 알코올로 특이한 냄새가 난다. 방부제·소독·살균제·합성수지·염료·폭약 따위를 만드는데 쓰이는 페놀은 자연분해가 불가능하고 독성이 매우 강해 맹독성 화학물질로 분류된다.

페놀은 눈·코·목에 자극적이며 피부와 접촉 시 빠르게 흡수돼 통증·마비·반점 등 침투성 독성증상을 일으킨다. 이 때문에 피부부식 작용이 일어나고, 경구 흡수 시에는 혈압과 체온이 낮아지며 소변양이 줄고 결국에는 호흡장애로 사망에 이르게 되는 매우 위험한 화학물질이다.

페놀에 노출된 대구지역의 임산부들은 설사·구토·피부질환에 시달렸으며, 인공유산 후유증으로 하반신이 마비된 피해자가 발생하는 가하면 분만한 아이의 피부·기관지 질환·사산·유산·기형아 출산 등 후유증 또한 무척 컸다.

이 사건으로 대구지방환경청 공무원과 두산전자 관계자 등 총 13명이 구속됐고, 관계 공무원 11명이 징계조치를 받기도 했다.

녹색연합을 비롯한 환경단체는 이 사건을 ‘1950년대 이후 발생한 대한민국 환경 10대 사건 중 1위 사건’으로 선정할 정도였다.

그로부터 22년 뒤 강릉에서 더 큰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해 강릉시 옥계면 포스코 마그네슘 제련공장에서 발생한 페놀 유출사건이 그것이다. 이번 사건도 낙동강 페놀 사건 때와 똑같이 페놀 유출의 여파로 인근 주민들이 중독되는 파장이 일고 있다.

지난 낙동강 사건 때와 달리 이번 ‘포스코 옥계 페놀 유출 사건’은 포스코 측이 페놀이 유출됐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점이 더 심각하다. 관리 감독이 그만큼 소홀했다는 반증이다. 따라서 이번 페놀 유출은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다.

최초로 페놀 유출이 발견된 건 지난해 6월이다. 공장 인근에 있는 다리 공사 현장에서 터파기 도중 시뻘건 페놀이 올라왔다. 목격자들의 신고로 포스코 측이 뒤늦게 조사에 나섰지만, 유출 추정 시점은 두 달 전인 4월로 밝혀졌다. 페놀 유출 사건이 발생한 지 두 달이 넘도록 포스코 측이 이를 모르고 있었다는 얘기다. 두 달이 넘도록 계속 페놀이 유출되고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부분이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공장 설비에서 유출됐는데 포스코는 정작 모르고 있었다는 것인데 이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페놀 유출량도 포스코 측과 정의당 심상정 의원, 환경단체가 다 다르다. 심 의원은 “강원도가 제출한 고발장에 적힌 기간과 포스코가 밝힌 1일 유출량을 계산하면 353톤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포스코 측은 15톤, 환경단체는 180톤이라고 각각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심 의원와 환경단체의 중간치만 하더라도 지난 낙동강 사건 때보다 훨씬 많은 양의 페놀이 유출됐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제일 중요한 것은 포스코 측의 태도다. 포스코 측은 페놀 유출 지점이 지하에 있어서 몰랐다는 무책임하고 황당한 해명만을 늘어놓고 있다.

지역 주민들은 포스코 측이 아직까지 번듯한 사과 한 번 하지 않고, 그저 정중한 유감 표시 정도만 한 것에 대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고 한다. 또 지역주민 보상 문제도 적극적이지 않다고 비난하고 있다. 언론에서는 포스코 측이 이번 사건에 대한 원인을 조작하고, 당국과의 유착 의혹을 의심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국토의 환경과 국민의 건강을 해치는 대형사건이다. 그럼에도 사후 처리는 어수룩하기만 하다. 정확한 사건 원인과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정부와 시민단체,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제3의 기구를 구성, 사건을 명명백백 가려내야 한다.

유출된 페놀 등 환경오염 물질로 인근 토양과 지하수를 정화하는 데 무려 11년이 소요된다고 한다. 그때까지 고통 받을 주민들의 어려움을 생각한다면 대충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낙동강 페놀 유출 때도 관련자들이 구속됐듯이 이번 사건도 권오준 포스코 회장을 비롯한 관련자를 가려내 법적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2014년 9월 24일
                                                    대한민국정상화감시단